진주
미캉 25-04-11 23:07 4
오늘은 해군본부에서 진행하는 장교급 이상의 사교 파티.

곧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열린 몇 없는 행사이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왈츠를 추기에 적당히 잔잔하다.



워낙에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그들이기에 참가는 자유라지만, 대체로 본인 직속 상사를 따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코비를 따라온 헤르메포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헤르메포는 코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참석할 사람이었지만, 직속 상사가 온 덕분에 더 마음 편하게 놀게 되었으니 그런 셈 치자.



“이야. 코비 대령 님이 스스로 여기를 오겠다고 하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 아냐?”

“하하…. 왜 제가 왔는지 아시잖아요. 헤르메포….”



그렇다. 사실 코비는 파티에 참석하는 미캉을 따라서 온 것이다.

원래라면 미캉의 손을 잡고 입장할 생각이었지만, 생각지 못하게 미캉의 일이 오늘 갑작스레 많아져 조금 늦노라 연락을 한 상태였다.



“소장님. 엄청 바쁜가...”

“그러게요…. 하지만 군 과학자가 그렇게 흔한 존재는 아니니까.”



헤르메포는 두 손으로 뒷머리를 받히며 파티장을 쓱 훑어보았다.

대장급 이상은 참석하진 않았지만 다들 강한 이(理)명을 지닌 자들뿐이다.

꽤 멋지게 차려 입은 사람 중에서는 빼어난 미인도 더러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다들 해적들을 상대하느라 자신을 관리할 사이도 없었겠지.

장교급이면 모두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헤르메포가 옆을 돌아보니 코비가 보이지 않았다.



코비 녀석, 어디 간 거야?



잠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분홍색 머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익숙한 주황색 머리가 보였다.


예상대로, 코비의 연인인 미캉이었다.


말소리가 들리진 않았으나 코비가 한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세상 순하게 미소 짓고 있는 걸 보니 영락없었다.

헤르메포의 추측이긴하다만 미캉이 지금 왔는지. 일은 바쁘지 않는지.

평소라면 에메랄드색의 청록색 드레스를 입었을 텐데, 오늘은 상아색의 드레스를 입었다느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미캉이 드레스 끝자락을 잡으며 수줍게 웃고 있으니 아마 잘 어울린다는 얘기도 했을 것이다.



‘...코비 녀석. 소장님 앞이면 저렇게 헬렐레하는 거…. 본인은 알까 몰라….’



헤르메포는 언제나처럼 사이 좋아 보이는 두 사람 곁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헤르메포를 발견한 미캉이 어둠 속의 촛불처럼 밝게 미소 지으며 헤르메포를 맞이했다.

그녀는 이제 코비의 연인이 되었는데.

지금도 미캉의 미소를 보면 잠시 멈칫하는 자신의 모습에 익숙해지지 않는 헤르메포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헤르메포도 와 있었구나?”

“당연하지. 내가 이런 자리에 빠진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푸흐, 그건 그래.”



쿡쿡 웃는 미캉의 목에서 주황빛 광택이 도는 진주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언급한 헤르메포였다.



“그 진주….”

“코비가 얼마 전에 선물해 준 거! 어때?”

“어…. 괜찮네.”



헤르메포의 반응에, 미캉은 혹시 둘이 같이 고른 건지 궁금해졌다.

헤르메포는 패션에 꽤 많은 관심이 있어서 자신도 가끔 상담을 하곤 하니까.

헤르메포가 입을 열어 대답하려 하자 코비가 말을 중간에서 막았다.



“헤르메포도 같이 있었어요.”

“뭐, 그렇긴…. 했지? 뭐…. 난 딱히 뭘 한 건 없는데.”



헤르메포는 속으로 “으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하얀 진주에서 묘하게 올라오는 주황빛의 은은한 광택이 누가 봐도 상급의 진주.

그것은 코비가 몇 달 전에 본인이 바다에 직접 잠수해서 캔 조개에서 얻은 진주였기 때문이었다.



- 헤르메포! 이거 미캉 씨한테 딱이죠!



요 근래 그렇게 환하게 웃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원래 사랑하면 저런 건가?

코비 녀석이 유달리 저런 건가?

미캉의 성격 상 그렇게 얻은 진주인 거 알면, 착용조차 안 하고 고이 모셔두었겠지.

그건 코비가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예쁘게 착용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 자신에게 원석을 주얼리로 만들 수 있는 공방 위치까지 물어봤으니까.



하여간. 여러모로.



'닭살.'



지금 헤르메포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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